르네상스 Renaissance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라는 풍요로운 발전의 시기가 찾아왔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는 사회와 정치에서뿐 아니라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도 진보의
주요한 촉매로 기능했다. '르네상스'는 수많은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므로 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 회화는 어떤 하나의 공통적이거나 문명히 정의할 수 있는 양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딕 회화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중세의
봉건제 사회에 의해 형성되었듯이, 르네상스 예술은 새롭고 급속하게 발전하는
문명에서 탄생했다.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현대 세계로 향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현대 서구 사회와 서구적 가치들을 형성하는 토대를 놓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대표
마사치오가 활동하기 한 세기 전인 조토의 작품에서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과학적, 정확성과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탁월한 균형과 조화 속에서 절정에 달했다.
또한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소재들이 증가했다. 르네상스의 말기에 이르러 마니에리즘(Mannerism)이 지배적인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420년 |
마사치오〈아담과 이브〉 1427년
레오나르도에 따르면, "마사치오는 그의 완벽 작품들을 통해, 모든 주인들의 주인인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취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830년 이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마사지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짧은 생애중 가장 좋은 시절을 무명으로 보냈지만 회화 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을 혼자힘으로 해냈다.”
마사치오의 세계관은 혁명이었다. 그는 지상 세계의 공기, 빛, 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들을 정직하고 부드럽게 그려냈다.
1427년 | 〈헤롯왕의 축제〉 도나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청동, 시에나 대성당 |
1427년 | 〈성 삼위일체〉 마사치오,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667×317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
1427년 | 〈세금을 바치는 예수〉 마사치오,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255×588cm,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 |
1430년 | 〈다비드상〉 도나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청동, 높이 158.1cm, 팔라초 델 바르젤로 국립박물관 |
1438-40년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의 참수〉 프라 안젤리코
이 그림은 피렌체에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 제단화의
프레델라 (그림 하단부의 띠)의 일부이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꿈틀거리는 역동성과 함께 섬세한 품격을 자랑한다. 고딕 양식의 요소들도 품고 있지만,
인물들은 실제로 관찰한 풍경을 배경으로 자연광 속에서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다.
1440년 |
1450년경 〈그리스도의 부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피에로 미술의 특징은 선명함과 엄숙미이다.
그의 작품은 로마 고전주의와 피렌체 혁신주의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수학적 구조와 밝은 색상 그리고 수정같이 맑은 빛을 결합하고 있다.
1455년〈산 로마노 전투〉 우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템페라화.패널에 템페라, 오스트리아 미술관
1459년〈성 세바스찬〉 안드레아 만테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판화.패널에 템페라, 오스트리아 미술관
1460년 |
1465년〈10명의 누드가 등장하는 전투〉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판화, 루브르 박물관
1480년 |
1480년 |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캔퍼스에 템페라, 255×588cm, 우피치 미술관 |
1482년경 〈프리마베라〉 산드로 보티첼리
보티첼리는 흔히 정교한 이교도적 우화나 신화에서 따온 장면 등을 그린 세속적인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조화와 선의 아들다움이 두드러지며, 부드럽게 가슴을 적시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의 만년에는 이것이 점차 깊어져 침울한 경향으로 바뀐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정치적 · 종교적 긴장에 대한 그의 반발이 표현된 것으로 추측된다.
1482년 |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예수〉 피에트로 페루지노,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
1485년 | 〈무아경에 젖은 성프란체스코〉 조반니 벨리니,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템페라, 미국 뉴욕프릭 컬렉션 |
1487년 | 〈비트루비안 맨〉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종이에 펜과 잉크, 34.3×24.5cm, 아카데미아 미술관 |
1498년 |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템페라화, 879×462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
1500년 |
1500년 | 〈피에타〉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174cm, 성 베드로 성당 |
1500년 | 〈죽은 예수〉 안드레아 만테냐, 이탈리아 르네상스, 템페라화.캔퍼스에 템페라, 브레라 미술관 |
1501년 | 〈다비드 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409cm, 아카데미아 미술관 |
1503년 |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53.3×76.8cm, 루브르 박물관 |
1504년 | 〈성모 마리아의 결혼〉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브레라 미술관 |
1505년 | 〈폭풍〉 조르조네, 베네치아 미술, 패널에 유채, 73×79.4cm, 아카데미아 미술관 |
1506년 | 〈초원의 마리아〉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
1508년경 〈바위 의의 성처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진정한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엔지니어였으며, 식물학, 해부학, 지질학 등의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의 특징인 서정적 미술은 자연이 바로 영감의 원천이라는 그의 확신을 보여준다.
1510년 | 〈전원합주곡〉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110×138cm, 루브르 박물관 |
1511년 |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바티칸 |
1512년 | 〈시스틴 예배당 천정화〉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
1508-12년경 〈나상裸像〉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인' 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서정성과는 대조적으로 미켈란젤로의 미술은 중후함을 특징으로 한다.
서사적 스케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초인적인 형상들로 가득 차 있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1513년 | 〈갈라테이아〉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빌라 파르네시아 |
1515년경 〈빈도 알토비티〉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에게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고전 미술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 결과 그의 회화는 영웅적인 웅장함을 지니고 있고,
그의 초상화에는 우아한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
1516년 | 〈노예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229cm, 루브르 박물관 |
1516년 | 〈모세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235cm, 성 피에트로 빈콜리 성당 |
1516년 | 〈세례 요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69×57cm, 루브르 박물관 |
1516년 | 〈젊은 여인의 초상〉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나무에 유채, 85×60cm,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
1516년 | 〈레오 10세의 초상〉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우피치 미술관 |
1516년 | 〈바커스의 축제〉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75×193cm, 프라도 미술관 |
1520년 |
1523년 | 〈바커스와 아리아드네의 만남〉 티치아노, 베네치아미술, 캔퍼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
1526년 | 〈페사로 제단화〉 티치아노, 베네치아, 캔퍼스에 유채,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
1514-30년경〈비너스, 사티로스, 큐피드〉 코레지오
코레지오는 살아 있을 당시보다 오늘날에 와서 더 유명해진 작가이다.
마치 바로크 화가 무리요처럼 코레지오의 그림들도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달콤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 겉으로 드러난 매력의 이면에는 감각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
1536년 | 〈이사벨라 데스테〉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
1538년 | 〈우르비노 비너스〉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119×165cm, 우피치 미술관 |
1540년 |
1541년 |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1460×1340cm, 시스티나 성당 |
1545년경 〈성 바울의 개종〉 틴토레토
베니스의 화가 틴토레토는 후기 르네상스의 지도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티치아노 밑에서 잠깐 공부한 다음 색상과 명암의 놀라운 대조, 폭넓은 시야, 극적인 동작 등을 보여주는 독특하고 생동적인 양식을 개발했다. 그의 회화들은 종교적 열정과 정열적인 '표현주의' 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그는 초기 르네상스와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지나 마니에리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1553년 | 〈다나에〉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프라도 미술관 |
1560년 |
1560년경 〈비너스와 아도니스〉 티치아노
서구 회화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티치아노는 가장 위대한 베니스 화가이자, 세계 최고의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혼을 사로잡는 듯한 연약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후기 작품들은 놀랍게도 20세기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580년 |
1586년 |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엘 그레코, 매너리즘, 캔퍼스에 유채, 361×488cm, 산 토메 교회 |
1594년 | 〈최후의 만찬〉 틴도레토, 매너리즘, 캔퍼스에 유채, 569×366cm, 성 조르조 마가오레 교회 |
1597-99년경〈성 마르티나, 성 아그네스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엘 그레코
엘 그레코는 마니에리즘 시기의 위대한 종교 화가이다.
그의 정열적인 상상력은 그 이후 마니에리즘 화가들의 양식적인 기교들을 뛰어넘는다. 그는 베네치아와 로마를 여행하고 나서 스페인의 톨레도에 정착했다.
그의 작품은 스페인 반동기의 종교적 갈등을 그대로 반영한 신비로운 열정이 드러나 있다.
16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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