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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畵 톺아보기

[로코코 명화] 18세기 영국의 풍경 초상화가.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년 ~ 1788년) '앤드루스 부부(1748~1749)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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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인즈버러의 작품인 이 소형 2인 초상화는 런던 국립미술관이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그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이 작품은 철두철미하게 영국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풍경, 인물의 자세와 용모, 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 등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데가 있다.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는 각국의 국민성, 문화적·사회적 전통을 강하게 반영하는 뚜렷한 특성을 지니는 회화의 유파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영국에는 18세기가 되기까지 그러한 유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인즈버러는 영국 초상화의 강렬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 작품은 그 전통을 구축하는 과정의 초기에 제작된 것이다.

토머스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 1748-49년경, 119x70cm, 캔버스 위의 유화 , 런던 국립미술관

미완성 초상화

이 초상화는 디테일 처리까지 꼼꼼하고 훌륭하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앤드루스 부인의 손 부분이다. 원래는 남편 엔드루스씨가 총으로 잡은 꿩 한 마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그리겠다는 설도 있고 앤드루스 부인은 공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달라는 다소 기묘한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을 왜 미완성인 채 내버려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행복한 부부

로비트 앤드루스와 프랜시스 카더는 1718년 11월 서픽(Suffolk)의 서드베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앤드루스는 22세, 그의 부인은 16세였다. 이 2인 초상화는 이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의뢰된 것으로 생각되며, 그림의 풍경은 서드베리 근처 오브리스에 있는 그들의 소유지임을 알 수 있다.

웬디 베켓(Wendy Beckett) 수녀의 '나의 가장 좋아하는 것들 : 전 세계의 75개의 예술 작품' 에는 이런 해석을 했습니다.

「이 두 부부는 서로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인은 벤치에 매우 뻣뻣한 자세로 않아 있고, 두 사람은 다정한 부부가 아니라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부부의 뒷편으로 솟아오르는 먹구름은 이들의 결혼생활이 곧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줍니다.」  웬디 수녀와 다른 해설자의 해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림을 보는 재미와 묘미가 아닐까요?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영국인의 태도

두 사람의 흠잡을 데 없는 모습과 태도는 와토의 회화 작품(아래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 도피적인 성질과 대조를 이루며 18세기 영국 사회와 프랑스 사회의 차이를 말해준다.

 

앤드루스 씨

시골 신사로서 간편한 복장으로 사냥총을 든 채 개가 함께 자세를 취한 앤드루스 씨의 진지한 태도는 영국 사회의 창조적 원동력을 시골의 저택과 소유지로 끌어들이려는 뿌리 깊은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 회화 작품은 두 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왼쪽의 2인 초상이며 다른 하나는 오른쪽의 풍경화이다.

게인즈버러는 그의 시대 상류 사회의 초상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명성을 획득했지만,

그의 첫사랑인 풍경화는 당시 진지한 예술형식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게인즈버러는 인물과 풍경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근대 농법

오늘날 영국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한 이 풍경은 18세기 중엽의 사람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옥수수는 파종기를 사용한 듯 줄마다 일직선으로 심어져 있는데 이것은 파종기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되던 방법인 손으로 씨를 흩뿌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초상화는 자기들의 최신 농법을 자랑스러워 하는 지주 계급을 그린 것이다.

 

 

“나는 초상화가 지겹다.

그래서 내 비올라 다 감바(첼로 비슷한 악기)를 챙겨 들고, 어디 조용하고 편안한 시골로 내려가 풍경화나 그리면서 인생의 자투리 시간을 즐겼으면 정말 좋겠다.”

토머스 게인즈버러

 

 

나무

오른쪽의 나무 세 그루는 전경의 오크나무와 균형을 이루어 우리의 시선을 원경으로 이끈다. 원경에는 높이 밀려오는 구름이 이 그림에 어울리는 멋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울타리를 친 목장

중경에서는 한 떼의 양들이 아담한 울타리가 에워싼 들판에 노니는 것이 보이며, 그림의 맨 왼쪽에는 소들이 별도의 울타리가 둘러진 니무 외양간 속에 있다. 이것은 앤드루스 부부가 근대 농법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울타리를 친다는 것만 해도 18세기에는 더 생산성 높은 경작을 위한 혁신이었다. 이전에는 양이나 다른 가축을 방목했기 때문에 가축들이 서로 뒤섞여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하면 가축의 건강에도 해로울 뿐 아니라 곡물에도 손실을 입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신발

앤드루스 부인도 다리를 꼬고 있다.

이 자세는 18세기 초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발은 당시의 유행에 따라 매우 작게 그려져 있다.

 

로코코의 영향

앤드루스 부인은 매우 훌륭한 공단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 옷은 아주 눈에 띄게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게인즈버러가 숭배했던 와토(Antoine Watteau, 1684-1721)페트 갈랑트(fête galante:’격식있는 축제)풍의 로코코 양식의 영향이다. 당시 영국 신사와 귀족 계급에서는 프랑스 의상이 유행했다.

 

정교한 벤치

정교한 철제 벤치는 앤드루스 부부의 자세와 마찬가지로 다리가 꼬여 있다. 이것은 화가의 상상에 의해 그려졌으리라고 짐작된다.

 

사실적인 풍경

비대칭적이며 중앙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구도는 로코코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의 하나이다. 그러나 게인즈버러는 전통적인 허구의 목가풍 전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옥수수 다발

전경과 중경에 보이는 옥수수 다발은 전통적으로 다산을 상징하며, 이 그림이 결혼 기념 초상화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화면 구도상으로는 이들의 위치가 그림의 길이를 살려내고 있다. (로버트 커밍의 그림으로 읽는 그림이야기를 기초로 작성했습니다. 디자인하우스)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

영국의 서드베리에서 태어난 게인즈버러는 초상화와 풍경화에 두루 뛰어난 화가로서 초기에는 17세기 네덜란드 화파의 영향을 받았다. 1740년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으며 1746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초상 화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해 입스위치와 바스에서 활동한 뒤 1774년 런던으로 진출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한층 발전시키고 왕가의 신임을 얻었다. 초상 화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풍경화에 대한 열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토머스 게인즈버러에게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주었던 앙투안 와토 (Antoine Watteau)와 그의 작품

 

페트 갈랑트
와토는 1702년 파리에 도착하자 곧 '페트 갈랑트(fêtes galantes)=새로운 미술 장르의 창시
자로 명성을 얻었다. 이 용어는 '궁정 사람들의 잔치' 라는 뜻으로, 1717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성원들이 고안한 것이다. 이 명칭은 음악가, 배우, 서로 희롱하는 연인들 등이 모두 섞여 야외에서 즐기는 모습을 담은 모든 야외 장면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와토와 동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귀족들의 풍속과 유행을 묘사하기 위해 이 장르를 즐겨 그렸다.

 

 

Antoine_Watteau_-_L'imbarco_per_Ci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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