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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3-14 - 예수는 빛이다 [그리스도 찬양]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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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of the Pomegranate

c. 1487

tempera on panel,

Sandro Botticelli.

 

201012/ 성탄절후 둘째 주일

그리스도 찬양

 

엡 1:3-14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3-14절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찬송, 즉 송영(doxology)이다. 신약에 들어 있는 시편이라고 보면 된다.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다. 설교자는 일단 찬송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찬송은 예배와 연관된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과 그의 행위 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상대화된다. 찬송과 예배는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는 영적 태도이다. 이런 말을 상투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일단 설교자가 이런 창조와 찬송의 영성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구원 문제와 직결된다. 피조물은 구원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없다. 이 사실을 실질적으로 인식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본문은 찬송의 이유를 하나님이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적인 복은 세상에서의 출세나 재산증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적인 복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복신앙에 떨어질 수 없다. 설교자는 이 사실을 일단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영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영은 구약의 루아흐나 신약의 프뉴마라는 용어가 가리키듯이 사람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삶이 우리가 규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성취한다고 해도 사람은 만족하지 못한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복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된 안식을 가리킨다. 신령한 복과 안식은 동일한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신령한 복인가?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찬송의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인가? 예수와 우리는 물론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예수는 존재론적으로, 선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가 다시 결합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분리가 곧 . 하나님과의 결합은 죄가 용서받았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7절이 말한다. 이런 내용은 가장 초보적인 교리이다. 교리는 뼈대이다. 이 뼈대에 살을 입혀야 한다. 교리의 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인간, 문명, 타락, 구원, 칭의, 종말 등의 개념을 두루두루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핵심적으로는 예수의 피가, 즉 그의 죽음이 왜 죄 사함의 근원이냐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예수의 피를 통한 속죄를 비밀이라고 말한다.(9)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밀에 눈을 뜨는 것은 기본적으로 은총이다. 시인이나 예술가들도 어떤 세계에 눈을 뜨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시인이 되거나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모두가 자동적으로 예수 사건의 비밀을 아는 게 아니다. 은총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죄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 인정할 수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은총 덕분이다.

죄와 사죄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실존적인 차원으로만 보면 안 된다. 우주론적인 차원이기도 하다. 천지만물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사실이(10)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놀라운 진술이다. 예수의 피, 속죄, 만물통일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설교자는 이런 질문의 세계 속으로 청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무조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또는 축복받는다는 명제를 반복하는 것에 머물면 어린아이 신앙으로 떨어진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세계는 크고 넓다. 개인의 영적 실존을 다루면서도 우주 전체를 포괄하기도 한다. 보라. 만물은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모두 죽는다. 파괴되고 사라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의 길이 열렸다면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는 길도 열렸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의 내용이 따분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래서 이런 내용만으로는 설교하기 힘들고 신자들의 종교적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나 선정적인 예화를 끌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계를 실질적으로 알면 그런 것들은 부스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이제 설교를 실제로 구성하는 것은 설교자 각자의 몫이다. 핵심은 예수를 통해서 일어난 개인과 인류와 우주의 구원을 실감 있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대구성서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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