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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1-12 - 예수는 빛이다 [지혜의 분별 기준]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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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30일/ 주현절후 넷째 주일

지혜의 분별 기준

 

고전 2:1-12/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위 본문의 키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혜, 그리고 성령이다. 구도는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인데, 그 지혜는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구도에서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일단 각각의 일반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당시에 가장 저주스러운 형벌이었다. 그 사실을 바울은 이미 고전 1:23절에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것을 무조건 인류 구원의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 당신 자신도 십자가 처형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그것을 물리쳐달라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이런 십자가가 어떻게 인류 구원의 길이 되는가?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할 자신이 있는가?

고린도는 헬라철학과 문명이 번성하던 곳이다. 철학(philosophy)은 지(소피아)에 대한 사랑(필로스)이다. 궤변론자(소피스트)들도 많았다. 바울이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든 것처럼 말한 것은(4절) 이상한 게 아니다. 이데아, 질료와 형상, 에이도스,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 개념과 경구에 매료되어 있는 이들에게 한 유대인 남자의 십자가 처형이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전한다는 게 간단한 게 아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분한다. 이런 구분이 그리스도교 인식론의 핵심이다. 사람의 지혜는 물론 철학적 인식론이다. 이것을 무조건 인간적인 것이라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밀의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 인식이라고 우겨도 안 된다. 무엇이 사람의 지혜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지혜인가? 그것이 실제로 구분이 되는가? 여기서 핵심은 ‘은폐성’이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7절) 설교자는 예수의 십자가가 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 안으로 청중들을 끌고 들어가야 한다. 그것에 관해서 아는 게 있어야 이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 통치자들은 모른다.(8절) 그 결과가 십자가 처형이다. 이 진술이 모순처럼 들린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지혜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십자가 사건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를 로마법에 따라서 십자가에 처형했다. 왜 몰랐을까?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이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아 비밀’이 복음서가 말하는 메시아니즘의 특징이다. 오늘도 이 사실은 여전하다.

비밀을 누가 알아볼 수 있는가?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대답은 성령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10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는 능력이라고 하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세상의 영은 하나님의 세계를 모른다. 도대체 하나님의 영, 성령이 무엇이며, 누구인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성령을 받으면 다 해결된다고 고집을 피우는 설교자들도 있다. 성령이 그리스도교 인식의 토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곤란하다. 성령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누가 참된 선지자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일단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이런 원칙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곤란하다. 예수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여기서 필요하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자들은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설교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12월 대구성서아카데미 설교공부 강의안, 기독교사상 2011년 1월호 게재)

 

대구성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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