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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이 여행

남한산성 행궁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다녀왔습니다.

by multimillionaire oz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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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쉬는날 이기도하고 신종코로나 때문에 불안해서 방구석에만 있다가 남한산성 드라이브를 다녀왔습니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원래는 씨앗호떡도 사먹고 잠깐 바람이나 쐬자고 나섰는데 산성을 보고싶더라고요. 그래서 가볍게 수어장대까지만 걸어갔다 오기로 하고 산행을 하기로했습니다. 수어장대는 주차장에서 산길로 1.5km로 구불구불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서 40분 정도 걸으니 수어장대가 서울과 경기일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산성 둘레길을 등산하는 등산객도 보이고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와서 이모양 저모양 모습들을 기록하느라 바쁘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고 노년에 사진한컷이라도 더 남기고 싶은 부부가 삼각대를 놓고 함께 사진을 담고있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남한산성행궁 한남루(漢南樓)

행궁(行宮)이란 왕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할 때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전란시․능행시․휴양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남루(漢南樓) 앞에서 우측으로 돌담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소나무 밭으로 이어져 있는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수어장대(守禦將臺)까지 이어집니다. 말은 못하지만 몇백년을 묵묵히 지켜오는 소나무들을 보면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되돌아 봅니다. 이 소나무들도 우리와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1번지에 위치합니다.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입니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합니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조선(朝鮮) 인조(仁祖) 2년(1624)에 남한산성(南漢山城) 축성(築城)과 함께 축조된 동, 서, 남, 북의 4장대(四將臺)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라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올라가서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지 몰랐는데, 청량산 정산이 해발 482m나 된다고 합니다. 성내와 인근의 양주(楊州), 양평(楊平), 용인(龍仁), 고양(高陽) 및 서울, 인천(仁川)까지도 조망(眺望)할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보니 서울 쪽으로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Lotte World Tower)가 미세먼지 관계로 흐릿하게 보이더군요.

수어장대(守禦將臺)는 당초에 단층누각(單層樓閣)으로 축조하고 서장대(西將臺)라 불리었으며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를 맡았던 수어청(守禦廳)(전(前), 좌(左), 우(右), 중(中), 후(後)의 5관(官)이 소속되었음) 중 우영장(右營將)이 진(陳)을 치고 있었던 곳이라고합니다.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인조(仁祖)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청태종(淸太宗)의 13만 대군과 대항하여 45일간을 항전하던 곳으로 영조(英祖) 27년(1751)에는 유수(留守) 이기진(李箕鎭)이 왕명(王命)으로 서장대(西將臺) 위에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외부 편액(扁額)은 수어장대, 내부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 이름하였다. 무망루라 함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인조(仁祖)가 겪은 시련과 인조(仁祖)의 아들인 효종(孝宗)이 볼모로 심양(瀋陽)(현 봉천(奉天))에 잡혀 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여 항상 청국(淸國)에 대한 복수심으로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합니다. 그후 영조(英祖), 정조(正祖)가 효종(孝宗)의 능소(陵所)인 여주(驪州) 영릉(寧陵)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장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사(恥辱史)를 되새겼다고 전합니다.

현 건물은 헌종2년(1836)에 유수 박기수가 개건하였는데 중층(重層)의 누각건물(樓閣建物)로써 그 형태와 구성이 우리나라 전통목조건축물 중 특이한 예에 속합니다. 지붕과 내부를 모두 이층으로 꾸몄으며 하층의 내진고주(內疹高柱)가 상층에서는 변주(邊柱)가 되는 평면구성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자료출처 :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침괘정(枕戈亭)은 산성 내 마을 행궁앞 언덕위에 있는 건축물입니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확한 한자음은 ‘침과정’인데, 관례상 ‘침괘정’으로 부릅니다. 침과는 ‘창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으로,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새긴다는 의미입니다. 이서李曙가 축성을 착수했을때 수풀속에서 이 건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축조 시기는 확실치 않습니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백제 온조왕의 궁궐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침괘정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보관하던 무기고나 무기를 만들던 무기제작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南漢山城鐘閣天興寺銅鍾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m, 입지름 100m로 몸체에 새겨진 명문 '聖居山天興寺銅鍾銃和二十八年康茂二月日'에 따르면 고려 현종 1년(1010)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태조 4년(921)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힙니다.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 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지고 해방 이후 덕수궁미술관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종은 원형의 문양 및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되 타종 시 종 울림이 좋게 하기 위해 약 3배정도 더 크게 제작하였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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