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와 로코코 연대표
고전주의와 바로크는 17세기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로카이유" 양식에서 기교적이고 장식을 중요시하는 단계인 바로크 예술은 18세기후반
신고전주의의 반향과 고전적으로 복귀 경향이 나타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가톨릭교회는 반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면서 화가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사실주의를 추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북유럽에서도 역시 렘브란트와 베르메르가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실주의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로코코 미술은 와토와 더불어 시작했으며, 로코코(Rococo)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예술형식이다. 어원은 프랑스어 rocaille(조개무늬 장식, 자갈) 에서 왔다.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18세기의 대부분 동안 유럽의 지배적인 양식이 되었다.
1600년대 |
1600-02년, |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식사〉 |
1600-42년경, | 구이도 레니 〈수산나와 노인들〉 |
1601-2년, | 안니발레 카라치 〈도미네 쿠오 바디스〉 |
1602-5년경, | 산체스 코탕 〈정물〉 그라나다 박물관 |
카라바조 〈성처녀의 죽음〉 1605-06년,
카라바조의 종교화들은 반종교개혁의 정신 아래에서 그려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의뢰한 사제들은 이 작품의 유래 없는 사실주의 때문에 수령을 거부했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1612-14년,
플랑드르의 카톨릭 신자였던 루벤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균형감과 열정을 보여준다.
1603년, | 안니발레 카라치 〈이집트로의 피신〉 로마 도리아 화랑 |
1610년(추정), | 오라조 젠틸레스키 〈류트 연주자〉 |
1612-21년경, | 아르테미샤 젠틸레스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스〉 |
1613년, | 구이도 레니 〈오로라〉 로마 카지노 로스필리오지 |
1617-8년(추정), | 도메니치노 〈물고기를 잡는 토비트가 있는 풍경〉 |
1619년, |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빌리아의 물장수〉 런던 웰링턴 미술관 |
1620년대 |
1621년, | 헨드리크 테르브룩헨 〈성 마테오의 소명〉 |
1624년경, | 구에르치노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 그리스도〉 |
1621년, | 구에르치노 〈오로라〉 |
1623년, |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 〈다윗〉 대리석, 로마 보르게제미술관 |
1626년, | 렘브란트 〈토비트와 새끼염소를 안고 있는 안나〉 |
1628년, |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랑 〈성 세라피옹〉 |
1630년, | 니콜라 푸생 〈케팔루스와 오로라〉 |
1632년, | 피터 파울 루벤스 〈사랑의 정원〉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
1633년, |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우르바노스 8세의 치세에 대한 찬양〉 로마 파라초 바르베리니 |
1634년, | 윌렘 클레즈 헤다 〈정물〉 |
1636년, | 렘브란트 〈눈이 멀게 된 삼손〉 |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레스카노〉 1636-38년,
스페인 왕궁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궁정의 여러 인물들을 탁월한 솜씨로 화폭에 담았다. 난쟁이(어릿광대)의 초상화도 그 중 하나이다.
1640년대 |
1640년, | 루이 르 넹 〈농부의 가족〉 |
1642년, | 렘브란트 〈야경〉 |
1644년, | 얀 반 고이엔 〈강 위의 요세〉 보스턴 미술관 |
니콜라 푸생 〈계단에 앉아 있는 신성 가족〉 1648년,
이 그림의 구성을 보면 모든 구석에서 푸생의 고전적인 균형감각이 드러난다. 특히 삼각형을 이룬 성 가족과 대좌 모양으로 그들을 받치고 있는 계단에서 더욱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고전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18세기의 신고전주의와는 정반대로) 정서적 힘과 정신적 강렬함이 나타나 있으므로 바로크 미술의 주류에 포함된다.
1648년, | 니콜라 푸생 〈포키온의 이방 풍경〉 |
1650년, | 클로드 로렌 〈캉파냐 풍경〉 |
1650년, | 클로드 로렌 〈목가적 풍경〉 |
1650년, |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 로마 도리아 팜필리화랑 |
1650년, | 프란스 할스 〈말레 바베〉 베르린 국립미술관 |
1655년, | 야콥 반 로이스달 〈유대인 묘지〉 |
1655년, | 피터 사앙레담 〈레넨의 성 퀴네라 교회〉 |
1656년,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
렘브란트 〈자화상〉 1659년,
사실주의는 바로크 회화의 핵심이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초상화를 보여준다. 이 자화상에는 어떠한 허식이나 꾸밈도 없다.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그 결과 작가는 자신의 실패로부터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1660년대 |
1609년 | 피터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
1622년, | 피터 파울 루벤스 〈프랑스 여왕 마리드 메디치의 마르세이유 상륙〉 |
1630년, | 디에고 벨라스케스 〈벌칸의 대장간〉 |
1631-2년,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
1635년경, | 조르주 드 라 투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
1635년, 안톤 반 다이크 〈사냥하는 차알스 1세의 초상〉 프랑스 루브르
1636년, | 피터 파울 루벤스〈 스테엔 성관이 있는 풍경〉 런던 내셔날 갤러리 |
1637년, | 윌리암 헤다 〈정물〉 |
1638-40년, | 니콜라 푸생 〈에트 인 아르카디아 에고〉 |
1640년경, | 루이 르 냉〈 농민들이 있는 풍경〉 |
1645년, | 프란스 할스〈빌렘 코이만스〉 |
1645년경, | 얀 데 헴〈꽃병〉 |
1645-6년, | 클로드 로랭 〈파리스의 판결〉 |
1648년, | 클로드 로랭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식이 있는 풍경〉 |
1648년, | 니콜라 푸생 〈포키온의 장례〉 |
1652년경, | 얀 스텐 〈여관 밖에서 구주희를 하는 사람들〉 |
1656-61년, | 베르메르 〈부엌데기〉 |
1657년, | 지안로렌초 베르니니 〈성 베드로의 왕좌〉 성 베드로 대성당 |
1658년, | 베르메르 〈델프 전경〉 |
1660년경, | 피에테르 데 호흐〈네덜란드의 안뜰 풍경〉 |
1660년, 얀 스테인 〈성(聖) 니콜라스의 축제〉 네덜란드 암스텔담 국립미술관
1664년, | 프란스 할스 〈하를럼 양로원의 여자 관리인들〉 프랑스 할스 미술관 |
1664년, |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
1665년, | 얀 다비즈 데 헤엠 〈꽃 정물〉 옥스퍼드 에시몰리언 박물관 |
1665-7년경, | 렘브란트 〈유태인 신부〉 |
1672년, | 지오반니 바티스타 가울리 〈예수이름의 승리〉 로마 일 제수교회 |
1680년대 |
1682년, | 클로드 로랭 〈실비아의 숫사슴을 쏘는 아스카니우스가 있는 풍경〉 |
1683년, | 퓌제 〈크로톤의 밀론〉 |
1700년대 |
앙투안 와토 〈키테라 여행〉 1717년
로코코 미술은 와토가 젊은 시절 정착했던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로코코 시대를 열고, 페트 갈랑트(fetes galantes)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했다. 사랑스럽게 묘사된 연인들로 가득한 탁 트인 광경을 그린 이 그림은 이 장르의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연인들은 방금 비너스의 사원에서 서약을 마치고 섬을 떠나려 하는 중이다. 원래 페트 갈랑트에는 가벼움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와토의 모든 작품들의 저류에 흐르는 슬픔을 발견할 수 있다.
1719-44년, | 발타자르 〈노이만 황제의 방〉 |
1720년대 |
1720년대 후반 | 카날레토 〈석공의 작업장〉 |
1720년(추정) | 앙투안 와토 〈이탈리아 희극배우들〉 |
호가스 〈거지의 오페라 중의 한 장면〉 1728년
로코코 양식이 런던을 지배하는 동안, 영국의 한 화가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발했다. 그것은 곧 풍자 회화이다. 호가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유머스러우면서도 대단히 도덕적이다.
1730년경, | 지암바티스타 티에폴로 〈병사들에게 말하는 제노비아 여왕〉 |
1730년경, | 프란체스코 구아르디 〈항구와 이탈리아의 고전 시대의 잔해〉 |
1735년경,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카드로 쌓은 집〉 |
1738년경,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주의깊은 간호사〉 |
1740년생 |
카날레토 〈베네치아 그리스도 승천일의 산 마
르코 계선지〉 1740년경
카날레토는 도시 경관의 상세한 부분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코코 전통에서 활동했다. 베네치아는 환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대단히 로코코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카날레토는 환상보다는 직선적인 건축과 비례의 우아미에 더 관심이 컸다. 카날레토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린 ‘베두타(veduta)풍경’ 이었다. 그의 작품은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를 예고한다.
1742년, | 윌리엄 호가스 〈 그레이엄 가의 아이들〉 |
1742년, | 프랑스와 부셰 〈 목욕하는 다이아나〉 |
1749년경, | 토머스 게인즈버러 〈 앤드루스 부부〉 |
1750년 후반, | 토머스 게인즈버러 〈 나비를 쫓는 화가의 딸들〉 |
1751년, | 프랑스와 부셰 〈 사랑을 달래는 비너스〉 |
디에폴로 〈레조니코와 사보르난의 결혼 우화〉 1758년 경
베네치아의 화가 티에폴로는 당시 가장 유명하고 추종자들도 많았던 화가였으며, 뛰어난 상상력과 구성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뷔르츠부르크 궁전 내의 프레스코화일 것이다. 이 웅장한 천정 프레스코화는 베네치아의 레조니코 궁전 (현재는 박물관)에 있다.
1760년대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잡은 사냥감들이 있는 정물〉 1760-65년
샤르댕은 로코코 시대의 화가였지만, 당시의 가벼운 경향의 예술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 했던 인물이다. 그의 엄숙하고 절제된 그림들은 종중 도덕이나 정신적인 의미를 담곤 했다. 이따금 그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장 오노로 프라고나르 〈까막잡기〉 1765년경(추정)
프라고나르 역시 와토와 부세를 따르는 로코코 화가였다. 이 야외의 장편 속에서 근심 걱정 없는 동심의 놀이가 벌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풍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1776년경,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소녀〉 |
1780년대 |
1784년, 조슈어 레놀즈 공 〈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1785년, | 토머스 게인즈버러 〈사라 시돈스 부인의 초상, Portrait of Mrs. Sarah Siddons〉 런던 내셔널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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