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名畵 톺아보기

[르네상스 명화]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 세계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초상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1. 1.
반응형

Arnolfini 부부의 초상화

 

두 인물을 그린 반 에이크의 이 놀라운 초상화는 1421년경 네덜란드 브루게스에 정착하여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인 은행가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증언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이 그림이 이탈리아에서의 예술적 혁신(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과 평행을 이루어 네덜란드 미술에 일어나고 있던 혁명의 선언이라는 점이다. 상징으로 가득 찬 이 회화는 지방의 화가가 그린 상류 계급 두 사람의 초상화라는 점, 그들의 결혼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 그리고 15세기 중엽의 결혼 모습을 통해 결혼이 의미하는 보편적인 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반 에이크는 또한 최신 미술 기법(특히 유화) 등 화가로서의 뛰어난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그는 당대에도 유럽 전역에 걸쳐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

60x82cm, 오크나무 위의 유화.

런던 국립미술관

 

하나뿐인 촛불

상들리에에는 촛불이 하나만 타고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보고 있는 하느님을 나타낸다. 당시에는 다산을 권장하는 의미로 신혼부부의 침대에도 불을 하나 놓았다.

 

 

" 네덜란드 회화는 아주 많은 것을 잘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

미켈란젤로

 

 

 

 

 

값비싼 과일

남부 유럽으로부터 수입되던 오렌지는 당시 북부 유럽에서는 사치품이었다. 여기에 그려진 오렌지는 어쩌면 그림의 대상 인물이 지중해 출신임을 나타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담의 사과'라고 알려진 오렌지는 또한 인간의 타락을 가져온 에덴동산에 있는 금단의 열매로서 욕정이라는 나쁜 죄를 뜻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인류의 '원죄적본능은 기독교의 결혼 의식을 통해 정화되는 것이다.

 

 

조반니 데 아리고 아르놀피니

1421년경 브루게스에 정착한 부유한 이탈리아 상인인 아르놀피니는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필립공의 궁정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부르고뉴 왕국의 일부였다. 아르놀피니는 나중에 노르망디의 재무 관리가 되었으며 수입 상품의 관세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그는 당시 궁정에서 유행하던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반 에이크는 침대 덮개나 조반나의 아름다운 녹색 드레스 등과 같이 넓은 부분은 번쩍이는 색으로 나타내는 등 유화의 영역을 폭넓고 유연하게 구사하고 있다. 유화는 북유럽에서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이탈리아 화가들이 유화를 받아들인 것은 훨씬 뒤의 일이며 그 속도 또한 매우 느렸다.

 

 

신발

벗겨진 신발은 종교 의식이 치러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회화가 정교한 결혼 증명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해준다. 조반나의 붉은 신발은 침대 가까이 있고 남편의 신발은 바깥세상에 가깝게 놓여 있다.

당시에는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서면 다산이 보장된다는 미신이 있었다고 한다.

 

 

 

마주잡은 손은 두 사람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의미로서 기독교 결혼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마주잡은 손은 또한 이 그림을 통일시키고 있으며, 그 형태는 그 위에 있는 샹들리에의 굽어진 모양과 어울려 있다.

 

 

 

 

 

 

 

 

 

 

성 마르가레트

침대 기둥 위에 새겨진 것은 한 마리의 용을 발로 밟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녀는 다산의 수호 성자인 성 마르가레트일 가능성도 있고, 곁에 이 매달린 것으로 미루어 가정 주부의 수호 성자인 성 마르타일 가능성도 있다. 두 수호 성자의 상징물은 모두 용이다.

 

 

 

 

 

 

 

 

 

 

 

 

서명

라틴어 서명은 법률 문서에 쓰이는 화려한 고딕식 서법으로 쓰여 있다. 씌어진 서명에는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안 반 에이크 1434년 여기에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화가는 또한 거울에도 자기의 모습을 그려 넣어서 이 순간에 자기도 참석했음을 나타냈다. 학자들 가운데는 그가 이 결혼식의 참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조반나 체나미

조반나는 부유한 이탈리아 가문 출신이므로 이 결혼은 의문의 여지없이훌륭한 결혼'으로서 철저하게 준비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결혼의 결과는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으며 아르놀피니는 뒤에 정부(情婦) 때문에 법정에 서기도 했다.

 

 

창문

왼쪽의 열린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고, 창틀에 촛대 하나와 오렌지색이 놓여 실내 공간감을 만들고 방 안의 물체 표면에 확산된 빛을 반사한다. 부부 사이에는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뻗어 빛에 의해 밝혀져 유기적인 형태와 천국의 왕관을 모두 닮았다.

 

 

침대

침대는 자손으로 대를 잇는 것이 중요시되는 왕가나 귀족 집안에서는 특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침대는 우리가 태어나 세상으로 나오고 죽을 때 세상을 떠나는 장소이다. 은색의 덮개는 정열을 상징한다.

 

부의 상징

의상과 가구에서부터 창가에 있는 수입된 과일에 이르기까지 이 그림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이들 젊은 부부의 부유함을 나타내고 있다. 침대 곁에는 사치스럽고 매우 값비싼 터키산 융단이 깔려 있는데, 이 또한 그들의 부와 지위를 말해주는 것이다.

 

 

 

 

 

 

 

 

 

 

 

 

드레스

조반나는 초상화나 결혼식 그림에 적합한 당시 유행하는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녹색은 다산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녀는 임신한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 당시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던 복부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세와 복부의 과장된 곡선은 다산과 미래의 임신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그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벼운 마음의 표현

이 개는 아주 무겁고 엄숙한 느낌을 주는 그림의 분위기에 밝고 가벼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꼬불꼬불한 털까지 정밀하게 묘사한 것은 기법상 대단히 놀라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개는 종종 정절과 육체적인 애정을 나타내는데, 여기서도 그러한 상징적인 목적을 지닌 것 같다.

 

 

 

 

 

십자가의 행진이 머문 곳,

이 거울을 그린 솜씨는 기적에 가깝다. 거울의 틀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따온 장면들을 그린 10개의 미니어쳐 메달들이 박혀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인데, 그 속에는 반 에이크 자신의 조그만 자화상과 이 예식에 공식적인 증인으로 참여한 또 다른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로 미루어 이 그림은 합법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리스털 묵주

묵주는 미래의 신랑이 신부가 될 여자에게 주는 흔한 약혼 선물이었다. 크리스털은 순결의 표시이며, 묵주는 신부의 덕성과 앞으로도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의무를 암시한다.

 

결혼식

15세기에 사제의 참석이 요구되지 않는 유일한 기독교 성사는 결혼식밖에 없었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은밀히 치를 수 있었다. 거울 속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 때문에 이 그림은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증명하는 법적 문서의 효과를 갖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되어왔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활동 시기 1422-41)

플랑드르 화파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얀 반 에이크는 오늘날의 벨기에 마스트리히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형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형인 후베르트 반 에이크(Hubert van Eyck, 1426년 사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얀의 일생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이 있다. 그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자였던 부르고뉴 공작 필립 공을 위해 일했다. 회화 외에도 공작을 대신하여 여러 차례 위험한 외교 임무도 수행했다고 한다. 그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전 유럽인의 칭송을 받았다. 거의 엄청난 영향력은 특히 베르메르의 작품(화가와 아틀리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유화 물감

물감은 흙이나 꽃을 미세한 가루로 갈아 만든 안료를 ‘전색제’가 담긴 용액에 섞어서 만든다. 전색제는 나중에 건조된다. 전통적인 ‘전색제’로는 달걀노른자 (템페라), 물, 그리고 양귀비나 아마인과 같은 기름들이 있다. 기름을 전색제로 하는 유화 물감이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강도와 유연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겉표면은 강도가 높고 오래가며 광택제로 얇게 칠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두껍게 칠할 수도 있다. 넓은 부분에 걸쳐 밝고 풍부하게 채색할 때는 광택제처럼 얇고 투명하게 덧칠할 수도 있으며 미세한 정밀묘사에도 효과적이다. 반 에이크는 유화의 기법을 완성시켰으며 여러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 가운데는 밝게 빛나는 햇빛을 표현하는 채색, 그리고 색조의 미묘한 점층 기법도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