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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畵 톺아보기

북유럽 르네상스 "퐁텐블로파(School of Fontainebleau)"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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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텐블로 파(School of Fontainebleau)[École de Fontainebleau(프)]"

 

Chateau_Fontainebleau

 

이탈리아적이 아닌 것을 '북유럽'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프랑스도 북유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좋은 예로는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장 클루에(Jean Clouet. 1485/90-1540/1)와 퐁텐블로 화파를 들 수 있다. 퐁텐블로 화파16세기 프랑스의 퐁텐블로 성()과 관련되어 하나의 양식으로 함께 작업한 일군의 작가들을 말하며 1차와 2차로 나뉜다.

프랑수아 1(1494-1547)는 스스로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위대한 이탈리아의 왕들에 뒤지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예술을 부흥,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야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퐁텐블로 궁을 전면 개축하는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는 그의 장엄한 계획을 실현할 미술적 전통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거장들을 불러왔으며, 이에 따라 1528~155830여 년에 걸친 작업이 전개되었다. 퐁텐블로 궁에서 작업한 2명의 가장 탁월한 이탈리아 미술가는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와 프리마티치오(Francesco Primaticcio, 1505~1570)였다. 이들은 각각 1531년과 1532년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피오렌티노는프랑수아 1세의 갤러리에서, 프리마티치오는대접견실에탕프 공작부인의 방에서 자신의 양식을 프랑스 궁정의 우아하면서 세련된 취향에 맞추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피오렌티노는 1540년 사망시까지 줄곧 종사하였다. 이들과 프랑스와 플랑드르 미술가들의 결합은 특별한 매너리즘 양식을 탄생시켰고, 이는 감수성과 예민한 장식적 감각 그리고 여성적인 관능미와 창백함, 우아함으로 대별된다. 벽은 소석회 또는 석고를 돌가루나 흙과 섞어 고부조(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를 완성했고, 금박을 올리는 스투코(Stucco) 기법으로 높고 낮음의 편차가 큰 장식 부조를 액자처럼 만들었다. 특히 피오렌티노는 가죽이나 양피지 같은 모양으로 틀을 만드는 특이한 모티브를 창안해냈으며, 이는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중적인 장식적 형태가 되었다.

 

Jean Clouet

Francis I, 1525-1530

Oil and tempera on wood panel

37 3/4 × 29 1/8 in

95.9 × 74 cm

Musée du Louvre

 

프랑스 출신의 궁정화가 클루에 (Clouet, Jean 어쩌면 그의 아들 프랑수아 클루에 François Clouet 일지도 모른다)프랑시스 1에서 전형적인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인간의 모든 약점을 배제시킨, 철저하게 군주다운 풍모이다. 초 인간적인 모습으로 위압하는 이 그림에서는 외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퐁텐블로 화파는 로소와 같은 이탈리아인 방문객들이 추구했던 우아미를 자신들의 화풍으로 삼았다. 그들에게서는 이탈리아 마니에리즘풍의 세련된 맛과는 다른 생생한 사실주의가 보인다. 또 프랑스적이라기보다는 북유럽적인 서툰 솜씨도 가끔 보인다.
짙은 숲 속에서 뜀박질하는 마스티프견을 데리고 있는 사냥꾼 다이아나는 나무의 님프를 잘 그려내고 있다. 크라나흐가 그린 나체의 사냥꾼과는 달리 다이아나는 전혀 수줍어하지 않으며, 사랑스러운 동물처럼 활기 있게 걷고 있다.

 

School of Fontainebleau

Diana Huntress

1550년, Oil on canvas, 191x132cm, 루브르

 

마니에리즘이 확산되는 북유럽


당시 이탈리아에서 온 프리마티치오(1505~1570)의 독특한 인물, 즉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길쭉하고 우아하며 약간 비현실적인 미술 형식은 사실상 1616세기 말까지 프랑스 미술에서 하나의 전형(典刑)이 되었다. 이런 형식의 미술은 북유럽의 귀족들에게 널리 인기를 끌었으며, 파리의 영향권 바깥에도 몇 명의 뛰어난 화가들이 있었다. 북부 네덜란드(요즘은 이 지역을 그냥 네덜란드라고 부른다) 출신의 요아힘 테와엘(Joachim Wtewael, 1566-1638)은 그런 화가들의 한 예이다.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활동 초기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한 다음 다시 위트레흐트로 돌아와서 정착했다. 그는 동시대인인 뒤러나 크라나흐가 발전시킨 자연주의적 성향을 다소 무시했지만, 네덜란드의 마니에리즘에서는 중요한 화가가 되었다.

 

Joachim Wtewael

The Judgment of Paris (1615)

 Oil on oak, 59.8 x 79.2 cm

 

 

목동 왕자 파리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여신에게 황금사과를 헌사하는 장면을 그린 파리스의 판결은 고도로 마니에리즘적인 조합을 보여준다. 세 명의 성스러운 숙녀들은 의식적으로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파리스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중대한 선택을 알린다. 심지어 주변의 동물들조차도 아름다운 뿔과 가는 다리를 자랑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마니에리즘이 융성하는 신화적 낭만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마니에리즘 양식의 또 다른 출중한 화가는 플랑드르의 화가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Bartholomeus Spranger, 1546-1611)이다. 그는 앤트워프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빈에서 일하다가 프라하에 정착했다. 1581년에 그는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할렘 아카데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Vulcan and Maia

Bartholomeus Spranger (1585)
Oil on copper, 23 × 18cm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슈프랑거의 벌칸과 마야는 머리가 아찔할 정도의 선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마야는 근육질의 음험한 벌칸의 무릎 위에서 활처럼 몸을 한껏 휘고 있다. 마치 그가 화살을 장전하기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이다. 벌칸이 긴 손가락 하나를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놓자. 그녀는 그 아래서 도발적으로 몸부림친다. 어찌 보면 약간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힘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퐁텐블로의 미술에는 가벼움과 귀족적인 순진함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특징들은 마니에리즘이 태양 가득한 파리에서 진짜 북유럽의 어두운 튜튼족의 숲으로 이동함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 슈프랑거와 그의 추종자들의 미술은 사악한 향취와 타락의 냄새를 풍긴다.

 

퐁텐블로에서 작업하던 다른 이탈리아 미술가들로는 아바테(Niccolò dell' Abbate,1509~1571)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1500~1570)가 있었으나 한편 뛰어난 벽화 사냥꾼 다이아나〉(1550)에서 보듯이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들에 의한 작품도 많이 있다. 신화적인 주제, 길게 늘어진 우아함, 목가적인 풍경의 배경, 복잡한 기교의 인공적인 분위기 등이 퐁텐블로 파 작품의 전형적 특성들이다.

 

2차 퐁텐블로 파는 종교전쟁(1562~1598)으로 단절된 이후, 앙리 4(1589 ~1610)의 후원으로 작업한 작가들이다. 뒤부아(Ambroise Dubois), 뒤브레이으(Toussaint Dubreuil,1561~1602), 프레미네(Martin Fréminet)를 중심으로 많은 플랑드르 미술가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은 17세기로 향하는 중개자로서 힘찬 양식으로 1620년경까지 이어갔으나 제1차 작가군들이 보여주었던 창조적인 탁월함은 지니지 못하였다.

 

 

마니에리즘, 이탈리아 語로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도 불리우는 매너리즘은 원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가교역할을 했던 16세기 후반의 미술사조를 뜻하는 말이다. 시기적으로 라파엘로가 죽은 이후 1525년부터 바로크 미술이 시작되는 1600년까지의 75년간인데, 예전에는 후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사조이다. 먼저 매너리즘의 어원은 ‘손’이란 뜻을 가진 이탈리아 어인 ‘Mano’에서 왔다고 하며 그 어원이 뜻하는 바는 일정한 규범의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 시기에 르네상스의 이상미, 조화, 이성, 현실성 대신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 등으로 형태의 기이한 왜곡과 변형이 일어난다. 매너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비례에 벗어나는 길쭉한 신체의 사람’, ‘기존의 구도에 벗어난 불안정한 구도’로 압축할 수 있다. 파르미자노(Parmigianino 1503~1540)의 <긴목의 마돈나>는 이런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사진: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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