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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畵 톺아보기

[르네상스 명화] "천국으로 보내주소서… 예배당을 바칠 테니" [조토 디 본도네]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ment

by multimillionaire oz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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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태동을 알리는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년경~1337)는 1305년에 베네치아 근처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소성당 내부에 대규모의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했다. 이 소성당은 파도바의 최고의 부자들 중 한 명이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성모 마리아에게 거금을 봉헌하여 지어졌다. 성당 내부의 좌우 벽면에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각각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져 벽 전체가 장식되어 있으며, 입구 위의 벽 전체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최후의 심판

조토, 1303-06년, 프레스코, 스크로베니 소성당, 파도바,

두 명의 천사가 양 쪽으로 갈라져 하늘의 문을 열어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천사들은 구원의 합창을 부른다.

몇몇 천사들은 마지막 심판을 알리기 위해 칼을 차고 승리의 깃발을 흔들고 있고 마지막 나팔을 분다.

그리스도는 화면 중앙에 황금빛 만돌라(Mandola, 신성한 하늘과 빛, 그리고 영광을 의미) 안에 양팔을 벌리고 그림 왼쪽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계신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늘에 오른 열두 사도들은 근엄하게 보좌에 앉아 지상을 내려보고 있다. 예수님을 둘러싼 천사들 중 두 명은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다.

예수님의 양 옆에는 열두 사도들이 옥좌에 앉아있다.

무지개색 후광 속에 앉은 심판자 예수의 발 아래로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구원의 십자가를 경계로 오른쪽에는 구원 받을 사람들이 천사들의 인도로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고, 왼쪽에는 심판 받을 사람들이악마들에 이끌려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이들을 그려 놓았다. 

극명한 대비를 정교하고도 강렬하며 사실적으로 표현해 회개하면 천당이고, 죄를 지으면 지옥행이라는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무덤에서 나와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선택받은 자들이 천국에 오르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큰 기쁨으로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반면, 오른쪽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공포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어둠의 공간으로 내동댕이쳐진 풍경이다.

 

천국에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왕들과 성인들, 사제들과 의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그들이 삶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있다.

전통에 따라 화가인 조토도 구원받는 사람들에 포함됐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흰 모자를 쓴 사람이 조토다.

<최후의 심판> 장면의 중앙 아래에는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등장한다. 스크로베니 집안은 대대로 은행업을 해왔다. 엔리코는 아버지 리지날도 스크로베니 때부터 교회에서 금기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으며 횡포 또한 심했다고 알려졌다. 단테의 『신곡(神曲)』에서도 ‘리지날도가 지옥에 있더라.’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그의 죄악은 널리 드러났다. 이런 까닭으로 엔리코는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부를 쌓은 아버지와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지옥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버지와 자신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거액의 성당 건축비용을 헌납했다고 한다. 엔리코는 교회에 거액을 헌금해서라도 지옥행을 면하고 싶었던 심정이었던 것이다. 왼쪽의 엔리코는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에게 스크로베니 소성당을 오른쪽에 있는 성직자의 어깨에 얹어 바치고 있다. 두 천사의 보위를 받으며 서 있는 성모 마리아는 오른손을 내밀고 있고, 엔리코는 왼손을 들어 성모님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은 소성당 입구를 잡고 있어, 마치 엔리코가 천국의 문 앞에 다가서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동작을 통해서, 비록 조토가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심판자인 아들 예수보다는 이해심이 많을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간구하는 엔리코의 심리 상태를 깊이 있게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엔리코가 무릎을 꿇고 있는 길에서 한발만 더 가면 바로 끔찍한 마귀가 들끓고 불길이 치솟는 지옥이니 이를 피할 수만 있다면 건축비가 얼마든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지금 엔리코가 어디에 있는지는 신(神)만이 알 것이다.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이 작품을 의뢰한 스크로베니도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데,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성모님에게 이 예배당을  지어 봉헌하고 있다.

성모님 곁에는 사도 성 요한과 성녀 카타리나도 서 있다. 스크로베니도 성전봉헌으로 인하여 구원받는 사람들 속에 끼어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에게 돈으로 하나님을 더럽힌다며 비난을 받았다.

<사탄루시퍼>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 22:15)

 

지옥에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벌거벗은 모습으로 있다.

그들은 불길이 혀처럼 날름거리는 지옥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타락한 인간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참하게 고통 받고 있다.

교수대에 매달린 것처럼, 머리카락이나 성기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한쪽에서는 거대한 사탄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을 닥치는 대로 삼켜서 배설하고 있다.

사탄 루시퍼가 뱀의 머리를 양쪽으로 깔고 앉아 저주 받은 영혼들을 양손에 움켜 잡 은 채 입과 귀로 또 다른 영혼들을 삼키며 아래로 배설하고 있다.

또 어떤 불쌍한 영혼은 마치 바비큐처럼 입에서 항문까지 쇠꼬챙이가 꿰어져 있다.

<음욕의대죄를지은영혼들>

결국 조토는 천국과 지옥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자극한다.

조토는 정교하고 강렬하며 사실적인 묘사로 회개와 심판에 대해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곳을 떠나면서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며 의인으로 살 것을 다짐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파도바로 모으고 있다.

출입문이 있는 서쪽 벽 전체는 최후의 심판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건물 입구에 거대한 최후의 심판 장면을 그리고 양쪽 벽에 성서의 이야기를 배치하는 것은 비잔틴 교회 장식의 규칙을 따름으로 예배당을 나갈 때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프레스코화는 마른벽에 안료로 그리는 프레스코 세코(건조한 프레스코 기법)과 안료와 석회를 섞어 젖은 상태에서 그리는 '부온 프레스코' 기법이 있다. 부온 프레스코는 회반죽으로 벽에 초벌칠을 하고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석회수에 안료를 섞은 프레스코 안료로 채색하는 기법이다. 내구성이 좋고 색상이 아름답지만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마쳐야 한다. 조토는 부온 프레스코 기법으로 작업했다. 완성한 후 하루가 지나면 경계선이 나타나기 때문에 작업기간을 추정할 수 있는데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경우 852개의 그림 조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품이 수백 년을 견딘다고 하지만 근처의 폭격과 지진으로 인한 건물의 균열, 내부의 습기와 오염으로 인한 훼손이 심했다. 1978년부터 2년간 실태조사를 거쳐 1985년부터 2001년까지 전면적인 보수작업이 이루어졌다.  오래되고 소중한 작품이라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 예약이 필수이며 제한된 시간 15분에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가기 힘들고 방문 절차도 까다롭지만 ‘꼭 한번 봐야 할 명작’ 리스트에 올려야 할 인류의 유산이라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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