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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 개관] 1. 한국 현대문학의 성격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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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현대문학의 성격

 

1) 현대문학의 범주편집

 

한국 현대문학의 범주와 그 성격은 문학이 기반하고 있는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현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과 내용이 달라진다. 한국 현대문학은 19세기 후반 이후 전통 사회의 붕괴와 함께 새롭게 성립되었다. 현대문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한 세기 정도에 불과한 짤막한 기간이지만, 대체로 개화계몽시대의 문학, 일본 식민지시대의 문학,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세 개의 단계로 구분한다. 한국 현대문학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수난과 분단의 비극을 겪으면서 한국 민족의 문화적 자기 정체성을 표상하는 가장 중요한 징표로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사회는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모순 극복을 위한 개혁운동이 각 방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침략적인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주 독립 운동이 지식층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된 바 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등의 근대화 작업이 시도된 바 있으며, 동학농민혁명(1894)을 통해 민중적인 의식의 성장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독립협회(1896)와 같은 사회단체가 결성되어 자주 민권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 계몽 운동이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추진되기도 하였다.


한국 현대문학은 이러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 한국인들의 새로운 삶의 가치를 대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문학정신의 전환을 계기로 새로운 시대의식을 형상화할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국문운동을 통한 민족문학의 기반 확대와 함께 민족정서와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한국 현대문학은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한국 민족의 모든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민족의 존재와 그 정신마저 말살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확대 강화되었다. 일제의 강압적인 문화통제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문화적 자기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은 그 정신적 위축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의 보루가 되었고 민족정신의 근거가 되었다.


1945년 한국의 해방은 민족문학의 방향과 그 지표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모든 반민족적인 문화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과 함께 참다운 민족문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족분단의 비극을 체험하고 전쟁의 혼란을 겪는 동안, 민족 전체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었고, 민족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현대문학의 전개 과정을 보면, 문학을 통해 민족 전체의 역사적 삶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과제가 여전히 현대문학의 영역에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문학은 민족의 현실과 역사적 조건에 대한 문학적 자기 인식과 그 확대를 통해서 문학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열어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은 민족의식의 문학적 형상성이라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손꼽을 수 있지만, 민족 전체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하는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독자적인 문화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세계문학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2) 국어국문운동과 현대문학의 성립편집

 

한국 현대문학은 개화계몽시대 국어국문운동을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한국인들은 오랜 동안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한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원화된 언어 문자 생활을 영위하여 왔다. 15세기 중반에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구술언어와 문자언어가 국어와 국문이라는 단일한 언어 문자 체계로 일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 계층은 국문을 외면하고 한문 중심으로 문자 생활을 지속하였다. 한국사회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변혁에 직면하게 되자, 일부 지식층들이 개화계몽운동을 전개하면서 한문을 버리고 국문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국문운동을 주도한다. 이 시기의 국어국문운동은 국문의 교육과 보급, 국문 신문과 도서의 출판, 국문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연구 등으로 확대됨으로써, 한국인들의 말과 글을 국문이라는 하나의 언어체로 통합시켜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국어국문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현대적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화적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개화계몽시대 국어국문운동은 갑오개혁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정부의 공문서에 국문 글쓰기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후 사회 각 방면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우선 새로운 교육제도가 시행되면서 신식 학교가 설립되자, 서구 문물과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교과용 도서의 국문 출판이 널리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국문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문자 생활에서 한문의 제약성을 벗어나 국문 사용이 폭넓게 확대된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대중적 매체로 등장한 신문과 잡지들이 국문 확대의 사회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이 순국문으로 간행된 뒤에  《대한황성신문》(1898)이 국문으로 발간되다가 뒤에 황성신문(皇城新聞)으로 개제하면서 국한문으로 고정되었고, 제국신문(1898)은 창간 당시부터 국문 신문으로 일관된 성격을 유지하였다. 종교 계통의 신문 가운데 그리스도신문(1897)도 창간 당시부터 국문 전용의 신문으로 출발하였다. 대한일신보(1904)는 창간 당시부터 국한문 신문이었으나, 1907년부터 국문판 대한일신보를 별도로 발간한 바 있다. 만세보는 한자에 국문으로 음을 병기한 특이한 국한문 표기 방식을 수용하였고, 대한민보(1909)의 경우에도 국한문을 채택하고 있다. 여러 사회 단체들이 간행한 『기호흥학회회보』, 『대한자강회보』 등과 같은 수많은 학회보와 『소년』과 같은 잡지가 국문 또는 국한문으로 출간되었으며 상업적인 출판사들이 국문 서적 출판에 앞장섰다. 더구나 국어 국문에 대한 연구와 정리 작업도 주시경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1907년에는 정부 내에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여 국어 국문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종합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립신문 창간호)

 

개화계몽시대 국어국문운동의 확대 과정을 보면, 그 실용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언어 민족주의적 요소가 무엇보다도 강조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사회에서 국어와 국문이라는 말을 통해 암시되는 언어 문자의 민족적 고유성에 대한 인식은 민족의 동일성과 정체성의 핵심적인 요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의 자주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언어 문자의 민족적 동일성과 그 정체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문 배제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담론화하기 시작하였다.

 

국어국문운동을 통해 국문이 확대되자, 한문의 절대적인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조선 시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던 한문은 더 이상 참된 글자라는 뜻의 진서(眞書)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한문이 한낱 중국의 글에 불과하다는 타자성(他者性)에 대한 인식은 엄청난 문화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성하고 유일한 의미와 진리의 상징물로 인식되어 왔던 한문이 쇠퇴하면서 모든 가치 개념을 중화주의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내세웠던 조선 시대 지배층의 태도가 새로운 지식층에 의해 비판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국어국문운동은 민족어로서의 국어와 국문의 재발견을 통해 한문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언어적 의미론적 탈중심화의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되었다.


개화계몽시대의 국어국문운동은 언어 의미론적인 면에서나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 단일하고 일원적인 언어체였던 한문의 지배로부터 모든 담론을 근본적으로 해방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민주주의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문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국문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국문의 대중적 실용성은 한문 중심의 지배층의 문자 생활이 보여주었던 문화의 계급적 폐쇄성의 파괴를 겨냥한다. 한문 중심의 관리 등용제도였던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신식 교육이 실시되자, 한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지켜 내려온 지배층의 문자로서의 지위를 잃고, 그 교육 문화적 기능과 정보 기능도 현저하게 약화된다. 그 대신에, 국문 교육이 제도화되고 국문의 활용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면서, 개화계몽시대의 새로운 지식과 정보, 문화와 교양은 모두 국문을 통해 수용되고 다시 재창조되어 계급적 차별 없이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한국의 민중들은 자신들을 억압했던 한문 중심의 낡은 사고와 가치를 모두 벗어버리고 국문을 통해 새로운 서구의 문물과 제도와 가치를 받아들인다. 낡은 것들이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변혁의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의 민중들은 한국 사회가 ‘낡은 조선’에서 벗어나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권력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새로운 힘임을 국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특히 언어 문자 생활에서 사회적으로 확대된 국문과 그 언어체로서의 국문체는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사회적인 담론의 유형을 포괄하며, 일반 대중의 일상적인 언어의 모순적이면서도 다층적이 목소리를 하나의 표현 구조로 담론화한다. 국문체는 언어와 문자를 통한 사물에 대한 인식 방법을 통합시켜 줌으로써, 언어체의 변혁이라는 문화적 기호의 전환이 한 사회의 사상과 이념과 가치를 혁명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문을 통해 삶의 세계에 존재하는 말의 다양성을 그대로 문자로 구현할 수 있게 되자, 국문체는 일상의 언어에 담겨 있는 사건, 의미, 이념, 감정 등을 구체적인 담론의 형태로 산출하면서 사물에 대한 사고와 인식의 체계를 전환시켜 놓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한국 사회는 개화계몽시대의 국어국문운동을 통해 현대적 의미의 문화적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어국문운동이 개화계몽시대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변혁의 현대성을 말해주는 핵심적인 징표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화계몽시대의 국어국문운동은 문자 생활에서 국문 사용을 보편화하고 국문체를 정착시키면서 국문을 통한 여러 가지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당시 새로운 대중적인 매체로 관심이 대상이 되었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시문(詩文)과 사장(詞章)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한문과는 달리, 국문을 이용한 여러 가지의 새로운 글쓰기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신문 잡지를 통해 다양한 계몽적 담론을 일반화시킨 국문 논설은 조선 시대에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글쓰기 양식으로서,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관점, 접근 방법, 어조 등에 의해 담론의 성격이 규정된다. 국문 산문 양식은 논증․설명․묘사․서사 등의 일반적인 기술 방식에서부터 대화․토론․연설․풍자 등의 여러 가지 글쓰기 방식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신소설을 비롯한 서사 양식도 다채롭게 분화한다. 산문 양식이 국문체를 수용하면서 그 특징적인 표현 구조를 조직하게 되는 것은 국문체가 주체의 구현에 기능적이라는 점과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3)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문학편집

 

개화계몽시대 국어국문운동의 대중적 확대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현상은 국문 중심의 새로운 글쓰기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국문체를 기반으로 성립된 새로운 문학이 바로 현대문학이다. 한문에 근거한 전통적인 글쓰기에는 문학이라는 말이 없다. 일반적인 글을 가리키는 문(文)이라는 말이 이것을 대신한다. 글쓰기 또는 글읽기를 모두 포괄하는 이 ‘문’이라는 말은 넓은 뜻으로 교양과 지식을 의미한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도리를 익히는 하나의 수양의 과정이다. 글은 인간의 감성이나 취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인간의 삶의 도리를 담아놓는 그릇(載道之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은 글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의 도리를 배우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효용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문의 권위와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개화계몽시대부터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다. 이 시기부터 국문을 기반으로 하여 개방적이며 대중적인 문자 생활이 가능해지자,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등장한다. 이광수는 ‘문학’이라는 용어를 서양의 ‘문학(literature)’과 일치시켜 그 개념을 ‘정적 분자를 포함한 문장’이라고 한정한 바 있다. 이것은 문학이라는 말이 전통적인 글 또는 ‘문’의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정서적 영역의 글쓰기로 규정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광수가 전통적인 ‘문’의 개념과는 다른 ‘문학’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 습득한 서구적 지식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이같은 관점의 변화를 통해 가치와 윤리의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던 문의 개념이 정서와 취향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새로운 문학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학식과 교양과 덕망을 뜻하던 전통적인 문의 개념 대신에 문학이라는 것이 상상력과 창조력의 소산이라는 특별한 예술의 영역으로 구분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심미적인 것이 하나의 새로운 인간적인 가치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개화계몽시대에 이루어진 새로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문학 양식에 명칭을 통해 그 방향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오랜 동안 읽혔던 소설들은 모두 구소설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고, 개화계몽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소설은 신소설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가문학에서 일반화된 신시라는 말도 널리 쓰이게 된다. 여기서의 ‘신’과 ‘구’는 단순히 시대적인 차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내용과 형식의 차이가 더욱 중요한 요건으로 문제시되고 있다. ‘신-’이라는 투어가 붙어있는 문학 양식은 기존의 문학 양식과 구별되는 형식과 내용상의 새로움으로 인해 우선적으로 그 존재 의미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용에 반영된 새로운 시대상이 그 중요한 특징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현대문학의 성립 과정에서 등장한 신소설이나 신시와 같은 새로운 문학 양식은 전문적인 문인 계층에 의해 이루어진 직업적 창작의 산물이다. 이 시기부터 직업으로서의 문필업이 등장하게 된 것은 물론 국문운동에 의한 독자 대중의 사회적 확대와 연관된다. 그리고 이 대중적 독자층을 상대로 하는 서적 출판과 판매라는 자본주의적 유통 구조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문적인 문필업이 새롭게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개화계몽시대에 등장한 신문사나 잡지사에는 신문 잡지의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글쓰기에 종사하는 기자가 생겼고 소설을 쓰는 전문적 작가도 등장하였다. 이들이 쓰는 글은 조선 시대의 지식층이 인간의 도리를 익히고 덕망을 쌓기 위해 행하는 글쓰기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는 하나의 문화적 생산에 해당한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경향신문, 대한민보 등과 같은 대중적인 신문은 전문적인 문필업의 형성을 위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보성관(普成舘), 회동서관(滙東書館), 광학서포(廣學書鋪), 동양서원(東洋書院), 박문서관(博文書館) 등의 상업적인 출판사는 전문적인 글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관을 맺으면서 그들의 글쓰기 활동을 지원하였다. 신문사들은 전문적인 문필가들을 기자로 채용하였으며, 출판사들은 전문적인 문필가와 대중 독자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필가들이 쓰는 글은 출판사에서 서적으로 발간되어 일반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로 제공되었다. 이에 따라 일반 독자들은 마치 자기 취향과 욕구에 맞는 물건을 구입하고 그것을 소비하듯이 글을 대하며 책을 구입하게 되었으며, 출판사는 일정한 이익을 문필가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신문에 연재되고 뒤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던 신소설은 바로 이같은 대중적 욕구를 고려한 근대적인 글쓰기의 최초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 산물에 해당하는 소설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어 근대적인 상업적 유통 관계에 의해 독자 대중과 만나는 최초의 사례가 바로 신소설인 셈이다. 국문을 통한 개방적인 언어 문자 생활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새로운 글쓰기의 시대, 바로 여기서 현대문학은 사회 제도의 변화를 내포하는 현대성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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