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톺아보기

[한국현대문학 개관] 3. 일본 식민지시대 문학

by multimillionaire oz 2019. 10. 30.
반응형

3. 일본 식민지시대 문학

 

1)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문학적 대응  편집

 

한국 사회는 1910년 일본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그 이전에 추구해오던 개화계몽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은 한국 민족의 모든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의 존재와 그 정신마저 말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식민지 지배 정책을 확대 강화한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를 폐지하였으며, 한국에 대한 경제적 수탈 정책과 한국 민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함께 회사령(會社令)을 선포하여 기업 활동을 강제 지배하고, 토지 임야에 대한 전국적이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인 소유의 토지와 임야를 수탈함으로써 한국인의 경제적인 지위를 박탈한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경영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철저하게 차별화하는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선 조선통감부를 통해 1906년 보통학교령(普通學校令)을 발표하고 한국의 모든 교육제도에 대한 개혁에 착수하고 보통학교 교과 과정에서의 일본어 교육을 국어라는 이름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 같은 강제 조치는 한국에 대한 영구적인 식민지화를 목표로 했던 일본의 식민지 교육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더욱 그 성격이 강화된다. 일본이 한국 강점 직후 발표한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1911)에서 한국인에 대한 교육을 보통 교육, 실업교육, 전문교육으로 구분하여 한정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자율적으로 대학을 설립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대학 교육과 같은 고등 교육은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일본은 한국인들의 사회 문화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 정책도 강화한다. 이미 합방 직전에 일본은 조선통감부를 통해 신문지법(新聞紙法)이라는 언론 규제법을 만들고 출판법(出版法)을 시행한다.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뒤에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제외하고 여러 사회단체가 발간하던 기관지나 잡지는 모두 폐간한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비판적인 이념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매 반포 금지 도서로 지정 압수하게 된다. 이러한 탄압과 규제는 한국 사회의 민족 사회 운동을 강압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발동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1925)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한국 사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개화계몽시대에 추구했던 문명 개화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핍박과 굴종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가 식민지 지배에 따라 왜곡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모든 산업이 식민지 지배에 종속된다. 특히 식민지 교육 정책에 의한 일본어 교육의 강화로 인하여 한국인의 언어와 생활 속에 깊숙이 일본어가 침투한다. 그 결과로 일본 식민지시대에 한국 사회에는 모방과 굴종, 창조와 저항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을 지니는 독특한 식민지 문화가 형성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한국 민족의 저항의식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1919년의 3․1운동이다. 3․1운동은 자주독립의 쟁취라는 민족적 숙원을 이루는 데까지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침략세력의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민족적 자기 인식을 확립할 수 있는 정신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3․1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민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3․1운동 이후 창간된 민간 신문과 집지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각종의 계몽 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계몽 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의 민족 사회운동 단체를 통해 폭넓은 민족 문화 운동으로 확대되면서 한국 민족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로 한국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식민주의(反植民主義)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한국 민족의 자기 전통과 그 존재에 대한 정당한 의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한국 민족은 민족적 자기 인식을 확립하고 민족자존의 의지를 세우고자 일본에 대항한다. 민족의 현실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논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2) 현대문학 양식과 기법의 확립편집

 

한국문학은 3․1운동 이후 발간이 허용된 민간 신문과 잡지를 통해 대중적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양식과 기법을 확립하고 있다. 3․1운동 직후 ≪조선일보(朝鮮日報)», ≪동아일보(東亞日報)≫ 등의 일간지가 한자를 혼용한 국문을 기반으로 창간되고, ≪개벽(開闢)≫(1920)과 같은 대중적인 종합잡지도 출간되었다. 그리고 순문학 동인지 ≪창조(創造)≫(1919), ≪폐허(廢墟)≫(1920), ≪백조(白潮)≫(1922), ≪금성(金星)≫(1923) 등을 중심으로 문단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개벽≫은 현상문예제도를 도입하고 ≪조선문단(朝鮮文壇)≫(1924)과 같은 문학 종합지에서도 추천제도를 통해 신인을 발굴하여 전문적인 문필가의 등장과 그 활동 기반을 확대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개벽>

   

<백조>

    

<조선문단>


                                                                     
이 시기에 등장한 이광수를 비롯한 문인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 문학에 대한 교양을 지니게 되었으며, 문학을 독자적인 문필 활동의 영역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이것은 문학이 전통적인 문(文)의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의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역사적 체계화에 앞장섰던 안확(安廓)은 문학을 미적 감상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예술로서의 문학의 본질적 성격을 명확하게 제시해 놓고 있다. 안확은 문학을 「오락의 재료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사상을 활동시키며 이상을 진흥시키는 것」라고 하였고, 시가․소설․서정문․서사문 등은 순문학(純文學)으로, 서술문․평론문 등은 잡문학(雜文學)으로 나누어 문학의 장르 영역을 구분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학이 유교의 구습과 한문의 악폐로 말미암아 전혀 발전하지 못했음을 개탄하면서, 한문의 질곡에서 벗어나 민족의 감정과 사상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민족의 경쟁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민족성의 경쟁이라고 전제하면서 신문학의 건설은 동서 사상의 조화를 통해 한국 민족의 특질을 발휘할 수 있는 조선문학(朝鮮文學)의 확립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광수의 경우에도 문학을 정적 분자를 표현한 언어 예술이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조선인의 조선문(朝鮮文)으로 작(作)한 조선문학’을 내세워 한국문학의 개념과 그 범주를 규정한다. 문학의 창조적 주체로서 한국 민족을 내세우고, 국어 국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성립된 문학이라는 언어 문자 중심의 범주를 설정한 것이다.

 

현대소설의 양식과 기법의 발견

 

일본 식민지시대 전반기의 소설문학은 주체적 자아의 추구로부터 민족적 현실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광수는 개인의 내면적 고뇌를 그려낸 단편소설 「소년의 비애」를 발표하고, 장편소설 「무정」을 내놓으면서 문단의 중심인물이 된다. 「무정」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에 철저하지는 않았으나, 개인의 운명적인 삶과 시대적 조건을 결합시킨 장편소설로서 그 근대적 성격이 인정되고 있다.

 

「무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요소는 자아의 각성에 근거한 사랑과 배움의 문제를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의 각성은 사회 현실에 근거하여 한 개인이 자기 존재의 인식을 확대시켜 나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무정」은 이같은 문제성에 접근하면서 전통적인 윤리 의식과 규범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반성적인 자기 각성의 단계를 거쳐 사회적인 존재 의미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계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수)

 
김동인은 일본 유학 시절 동인지 「창조」의 발간을 주도하였고,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등을 통하여 현대적인 단편소설의 성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배따라기」는 열등의식과 오해가 빚어낸 형제간의 파멸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훼손된 삶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을 통해 삶의 비극적인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감자」는 주인공이 가난 속에서 도덕적 의지와 윤리 의식을 상실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사건의 경과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간결한 문체가 특히 주목된다.


현진건은 「백조」 동인에 참가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를 그린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과 함께 궁핍한 노동자의 삶의 단면을 그려낸 「운수 좋은 날」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도향은 「백조」 동인의 한 사람으로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등을 발표하였다. 「벙어리 삼룡」은 신분적 육체적 불구성을 자기 희생의 과정을 통해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물레방아」와 「뽕」은 빈궁과 애욕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김동인)

         

 (염상섭)

염상섭은 「폐허」의 동인으로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함께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암야」, 「제야」 등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분명하게 한다. 그의 초기 작품 가운데에서 「만세전」이 특히 주목된다. 이 작품은 3.1운동 직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동경 유학생이 조선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하는 동안 목격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의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인식이 이 작품에서처럼 구체화된 경우를 이전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에서부터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 상황을 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현대소설의 면모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서정의 세계와 시적 형식

 

시문학의 경우를 보면, 서구적인 자유시 형태를 수용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독자적인 형식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의 시들은 감상주의에 빠져들어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현실적 상황에 대한 시적 인식의 확대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적인 운율의 발견을 통해 한국 근대시의 시적 형식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다. 주요한의 「불노리」가 보여주고 있는 자유시에의 지향은 시적 자아의 확립과 개성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시형식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시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에서 전통적인 민요의 율격을 재구성하여 서정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으며, 이상화는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고뇌를 극복하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적 인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에서 역사에 대한 신념을 여성적 어조로 형상화하여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진달래꽃>

             

김소월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에서 시적 형식의 완결을 추구해온 개인적인 노력이 독자적인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예로 손꼽을 수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김소월은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여들여 그 정조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즐겨 다루어지고 있는 자연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 공간으로 바뀌어지고 있으며, 개별적인 정서의 실체로 기능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진달래꽃」, 「산유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접동새」 등이 모두 이같은 예에 속한다. 김소월의 시가 지니고 있는 또다른 미덕은 토착적인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용운은 <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적 관심은 모두 님이라는 존재에 집중되고 있으며, 시를 통해 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님>은 시적 자아와 함께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님은 이미 현실에서 떠나가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용운은 님이 떠나버린 슬픔은 말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님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신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는 의지적이며 강렬한 어조가 돋보인다. 한용운의 시의 정신은 역사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가 삶에 대한 정직성을 지키고, 악에 항거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투쟁했던 행동적 실천가였음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의지를 시적으로 구현하면서 가장 서정적인 어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한용운)

               

 이상화의 현실 감각은 김소월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보다 더 비장하고 절망적이다.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경우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정 자아가 이상화의 시에서는 파멸하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무자비한 고통의 현실을 이상화는 어둠의 동굴, 죽음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어둠의 현실을 등지고 동굴과 밀실 속으로 도피하고 격앙된 어조로 삶의 구원을 희구한다. 이상화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어둠의 현실을 뚫고 현실의 한복판에 나서는 경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문학운동의 계급적 담론

 

한국 근대문학은 일본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을 통한 계급 이념의 조직적인 실천을 추구하는 계급문학운동을 경험한 바 있다.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한국문학은 자아에 대한 각성과 함께 민족의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주축으로 그 시야가 확대되었다. 특히 식민지 치하에서의 민중의 궁핍한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지식인들의 현실 비판 의식을 폭넓게 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학 양식과 담론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학적 경향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되면서 조직적으로 확대된 것이 바로 계급문학운동이다.


계급문학운동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을 근거로 하여 조직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1925)을 기반으로 대중적 실천을 도모하고 있다. 식민지 현실의 계급적 모순에 대한 자각은 물론 계급 의식의 고양과 함께 더 나아가서는 계급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으로의 진출을 촉구한다. 계급문학운동은 이 같은 정치적 경향성으로 인해 일본 식민지 지배 세력의 혹독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만, 식민지 상황 속에서 왜곡된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계급적 모순 구조에 가장 치열하게 대응하면서 다양한 탈식민주의적 문학 담론을 생산하게 된다.


계급문학 운동은 신경향파의 시대를 지나 목적의식기로 접어들면서 이념성이 강조되고 있다. 1927년의 방향전환 이후에는 대중성의 획득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상대로 하는 노동문학과 농민문학의 실천에 주력한다. 그 결과로 소설의 경우, 최서해의 「탈출기」, 조명희의 「낙동강」,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황혼」 등이 발표된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계급의식에 기초하여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계급투쟁이라는 무산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내세우고 있다.


이기영은 계급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농민들의 삶을 다룬 「홍수」, 「서화」 등을 발표한다. 장편소설 「고향」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허덕이는 소작 농민들의 고통과 이들을 착취하는 지주 세력의 횡포를 대조적으로 제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식인 청년의 등장과 함께 점차 계급적 자각과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뜨는 농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로 단합하여 지주 세력에  대응하게 된다.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의식의 성장 과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농민들의 삶과 그 풍속적 재현에도 성공하고 있다. 


한설야는 「과도기」,  「씨름」, 「사방공사」 등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인 형성과정과 그 의식의 추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장편소설 「황혼」은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식민지 예속 자본가 계층의 생활과 의식이 그 전반부의 줄거리를 형성한다.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자본가들의 행태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확대과정과 맞물려 있고, 그러한 현실적 상황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조직적 실체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시의 경우, 박세영, 박팔양, 임화, 김창술 등이 식민지 현실의 계급적 모순을 비판하고 계급투쟁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시를 많이 발표하고 있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은 이른바 단편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는데, 계급적 현실의 모순을 시적 정황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3) 일본 군국주의와 문학의 전환편집

 

한국문학은 193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문학에 대한 사상적 탄압이 자행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은 만주전쟁 이후 식민지 한국에 대한 통치 방식을 바꾸면서 이른바 내선일체의 논리를 내세워 황민화 운동을 구체화하였으며, 한국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사상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창씨개명 운동을 통해 한국 민족의 정체를 부정하고 1940년부터는 일상어로서의 한국어 사용조자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한국 현대문학은 자기 언어를 상실한 암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문학은 1935년 조선프로예맹의 강제 해체를 고비로 하여 문학의 주조를 형성하고 있던 집단적 이념 추구의 경향이 사라지고, 개인적 정서에 기초한 다양한 문학적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문학 자체의 내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의 변화에 따라 강요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식민주의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문학을 통해 문제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30년대에 이루어진 모더니즘적 경향의 새로운 문학은 한국 근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계급문단의 붕괴와 리얼리즘적 경향의 퇴조에 뒤이어 등장한다.

 

이 시기의 모더니즘 문학의 경향은 정치적 이념성을 거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학적 순수주의 또는 순수문학의 경향으로 평가된 적도 있다. 이 새로운 문학이 집단주의적 논리와 역사에 대한 과도한 전망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 개인주의적인 취향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문학적 주제 의식에서 일상성의 의미가 그만큼 중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문학의 매체로서의 국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자리잡게 되고, 언어적 기법과 문체 자체가 문학적 성과를 좌우할 정도로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문단에서 기교주의 논쟁을 촉발하면서 모더니즘 문학이 확대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경향과 직결되고 있다.         

                                        

<시문학>

                

<시인부락>

1930년대의 문인들은 집단적인 조직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소그룹 중심의 동인 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출구를 모색하였다. ≪시문학(詩文學)≫(1930), ≪삼사문학(三四文學)≫(1934), ≪시인부락(詩人部落)≫(1937), ≪단층(斷層)≫(1937) 등의 동인지가 발간되면서, 문학의 새로운 경향이 이들 소그룹의 동인 활동을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구인회(九人會)>(1933)와 같은 문학 동인 조직이 형성되어 소설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신동아(新東亞)≫(1931), ≪조광(朝光)≫(1935)과 같은 월간 종합잡지를 신문사에서 간행하여 문예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1930년대 말기에 간행된 ≪문장(文章)≫(1939), ≪인문평론(人文評論)≫(1939)은 순문학잡지로서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고 중요 작품들을 널리 수록하게 되었다.

 

소설적 기법과 정신의 확대

 

일본 식민지시대 후반기에 해당하는 1930년대 중반 이후의 소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적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 내적인 요건에 대한 예술적 추구과정이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계급문단의 강제 해체 이후에 민족과 역사, 계급과 현실에 대한 관심을 배제시킨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문학적인 테마로 다룰 수 없게 되자, 일상적인 개인의 삶과 내면 의식을 추구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소설적 기법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공간 의식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적인 소설이 많이 등장하였고 예술의 자율적 속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능해진다. 특히 다양한 주제의 장편소설들이 등장하여 소설문단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은 일상의 의미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모더니즘의 소설적 경향을 대표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성탄제」, 「천변풍경」 등은 그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인공은 주변의 생활이나 다른 인물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도시 공간을 방황한다. 사회적인 현실과 단절된 상태로 개체화되어버린 인간의 내면 의식을 따라가는 심리소설 기법이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상은 「지주회시」, 「날개」, 「동해」 등의 작품에서 현실과 대립된 자아의 욕망과 그 존재의 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날개」는 자아의 형상과 그 존재 방식에 대한 회의와 그로부터의 탈출 욕망을 공간화의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도시의 병리를 대표하는 매춘부인 아내와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태준은 인물에 대한 내관적인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달밤」, 「가마귀」, 「영월영감」 등의 작품은 허무와 서정의 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에의 강렬한 호소를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달밤」은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는 인정미를 그려내고 있으며, 「가마귀」는 죽어가는 인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나가는 작가의 감각적 묘사 능력이 잘 나타나 있다. 

(이상)

이효석의 문학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등 계급적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던 동반자 작가로서의 활동이 그 전기에 해당한다면, 1933년 「돈」을 기점으로 하여 「산」, 「메밀꽃 필 무렵」 등을 발표하게 된 것이 후기에 해당한다. 이효석의 후기 작품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성적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많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의 문맥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자연과의 친화, 본원적인 인간의 삶과 원초적인 사랑은 이효석 문학의 주제로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배경과 인물 및 사건의 긴밀한 조화를 추구하는 서정적 문체는 이효석 문학의 독특한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다. 
 

(김동리)

         

<무녀도>


김동리의 문학 세계는 토속성이 근간을 이룬다. 그의 소설이 지닌 토속성은 「무녀도」에 잘 투영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소설 창작의 원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무녀도」에서는 토속신앙과 외래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해 생기는 정신사적 갈 등을 그려내고 있다. 「황토기」의 경우에도 토속적인 신비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밖에도 김유정의 「동백꽃」, 최명익의 「장삼이사(張三李四)」, 허준 「습작실에서」, 박화성 「홍수전야」, 최정희 「흉가」,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등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지목되고 있다.

(탁류)

1930년대의 장편소설 가운데 채만식의 「탁류」는 한 여인의 비극적이 삶이 이야기의 주류를 이루지만, 실상은 전통적인 인습과 새로운 풍속이 서로 맞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시련과 역경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염상섭의 「삼대」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의 한 단면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와 그들의 삶의 태도 등이 입체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삽화 중심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와 소도구처럼 개별화된 등장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일상적 공간의 소설적 재현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1930년대 후반의 소설 문단에서는 역사소설의 등장이 주목된다. 홍명희의 「임꺽정」, 이광수의 「마의태자」,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현진건의 「무영탑」, 박종화의 「금삼의 피」 등은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빌어 온 작품이다. 이밖에도 현진건의 「적도」는 애정 갈등을 주축으로 물신주의와 향락이 판을 치는 세태의 변모를 묘사하고 있으며,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 운동의 실천적 방향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광수의 「흙」,  김남천의 「대하」, 이기영의 「봄」, 한설야의 「탑」 등도 이 시기 소설적 성과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시적 모더니티와 그 정신적 극복

 

1930년대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언어적 감각의 혁신을 통해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고 있다.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 『백록담』, 김영랑의 『영랑시집』, 김기림의 『기상도』, 오장환의 『성벽』,  김광균의 『와사등』 등과 같은 시집을 보면, 새로운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이한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 정지용은 시에 있어서의 언어의 중요성을 각별하게 인식했던 시인이다. 그는 다양한 감각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감상성에 치우쳤던 시적 정서를 절제하고 자 하였다. 그의 시에서 모든 대상은 이미지를 통해 공간적으로 구성되어 나타난다. 김영랑의 경우에도 섬세한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시의 리듬을 민요적인 가락으로부터 개성적인 율격으로 바꿔놓고 있다. 오장환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새로운 근대적 문물을 비판적으로 노래하였고, 김광균은 시적 언어의 감각성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회화적인 수법이 특히 주목된다. 김기림은 시정신의 건강성을 강조하면서 시적 정서를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이미지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는 근대적 문물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모더니즘 문학론을 전개한 바 있다.      

<백록담>

      

(정지용)

1930년대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모더니티의 문제성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면서 서정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며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 의식을 추구한 시인들도 있다. 서정주의 『화사집』, 유치환 『청마시초』, 김광섭의 『동경』 등이 이같은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서정주는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관능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토속적인 자연 속에서 한국인들이 영위해온 전통적인 한의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유치환은 인간의 죽음과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 의지의 시적 구현에 힘쓴다. 그의 시들은 생명에 대한 애착과 사랑,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육사)

               

(윤동주)

1930년대 후반의 시에서 주목되는 경향의 하나는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저항과 그 비극성이다. 이육사의 『육사시집』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모두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해방이 이루어진 후에 출간되었다 이육사의 시에서 널리 확인할 수 있는 자기인식과 그 정신적 초연성은 그가 보여준 현실에서의 실천적 행동과는 대조적인 일면도 있다. 신념에 가까운 고결한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현실 체험의 공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육사와는 달리 윤동주의 시에서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의 인식이 시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자기 성찰은 그것이 실천적인 행동의지로 외현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뒤돌아봄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극문학과 연극운동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신파극의 영향을 벗어나 근대극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연극운동도 일어난다.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토월회」(1923)와 같은 극단이 조직되었으며, 조명희의 희곡 「파사」, 김우진의 희곡 「산돼지」 등이 발표되어 극문학의 발전도 가능하게 된다. 계급연극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이동소극장을 중심으로하는 연극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신건설사와 같은 전문적인 계급연극 극단이 결성되어 계급연극의 대중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와 함께 송영의 희곡 「일체 면회 거절하라」, 「황금산」 등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1930년대에는 극예술연구회(1931)의 창립과 함께 수준높은 번역극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창작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극문학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유치진의 경우에는 「토막」 등의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사실주의적 연극의 새로운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 함세덕의 「동승」 등이 극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댓글